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계속 나오던 재개발이 드디어 되는가보다. 우리 아파트 앞엔 4차선 도로가 있었는데 없어졌네.

그야말로 폐허가 됐네.

그 길을 건너면 엄마가 했던 작은 수퍼마켓. 반대 방향엔 안양역. 안양역의 나무 계단들과 노란바탕에 갈색줄이 그어진 전철표. 아직도 기억나는 엄지유치원 선생님들 얼굴. 아침이면 잘 다려진 옷과 하얀 스타킹을 신고 가게 앞에서 유치원 차를 기다렸지.

집 앞 안양2동사무소와  학교가 끝나면 몸보다 큰 책가방을 메고 뒤뚱이며 매일 들렀던 도서관. 거기서 나던 오랜 책냄새.

동생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가려면 지나야 했던 놀이터, 엄마랑 장보러 갔던 안양시장과 가족들과 자주 가던 솔잎노래방. 그 앞 샤론미술학원과 매주 가던 목욕탕. 양볼 뜨겁게 쪄져서 나와 반짝이는 베이비오일 냄새를 풍기며 나와 시원한 식혜를 연신 꼴깍대며 아빠랑 같이 먹을 호떡과 붕어빵을 넣어 품에 안고 달려가던 집으로 가던 길.  본백화점 가는 사거리의 돈가스집. 병원을 다녀오면 엄마는 돈까스를 먹으라고 티비 위에 돈을 올려놓으시곤 했지. 철쭉이 피고 햇볕이 따가워 질 때즈음이면 들르던 안양 유원지와 관악사.

그리고 낡은 나.



아파트에는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우리집 4층으로 가기 위해선 모든 층의 가족들을 만나야 했다. 그때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거의 다 알았다. 종종 무섭게 계단에서 아줌마를 때리던 2층 아저씨. 공부를 잘했던 전교1등 오빠가 사는 3층을 지나면 우리집이었다. 준비물을 놓고 오면 가벼운 것은 베란다에서 엄마가 봉지에 담아 날려내려주곤 했다.

4층에서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신나서 뛰어가다가 동생이 자동차 문에 머리를 박은 일. 귀여웠어. 아파트 담장을 넘다가 오빠의 옷이 찢어진 일. 새마을 금고앞 버려진 자전거로 아파트 주차장을 누비던 신나게 까맣게 탔던 4학년 여름. 이사가기 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엽서를 보내줬던 튼튼영어 선생님.

IMF가 오기 전, 내가 기억하는 90년대.
한 페이지.